posted by 퍼니앙스 2012. 6. 22. 02:13

일하는 노인 30% 뿐…50%가 “경제상태 나쁜편” 
생계형 일자리 원하는데 정부선 소득보충형 지원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밥맛이 절로 나죠.”

오전 8시50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어김없이 채한기(66)씨가 탄 자전거가 안산시외버스터미널 주유소로 들어선다. 손톱 끝엔 기름때가 거뭇해도 주유소로 들어오는 차량을 향해 “어서 오십시오”를 외치는 채씨의 목소리는 젊은이들 못지않게 힘차다.

채씨는 지난해 9월부터 넉달째 보건복지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이곳에서 주유원으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유 구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기름을 바닥에 흘리는 실수도 잦았지만 이제는 4만원이면 4만원, 손님이 원하는 만큼 딱딱 끊어 맞출 정도로 ‘베테랑 주유원’이 됐다.

» 보건복지부의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구직에 성공한 채한기(66)씨가 24일 오전 일터인 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일을 하며 환히 웃고 있다. 안산/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주 6일 하루 다섯시간 일해 채씨가 받는 돈은 30여만원. 그는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손자들 용돈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웃었다. “젊은이들과 더불어 일하면서 생각도 젊어지는 덤도 있다”고 했다.

채씨처럼 일자리를 찾은 노인들에게 ‘내일’은 ‘죽지 못해 맞는 하루’가 아니라 ‘새 태양이 뜨는 새날’이다. 하지만 다수의 노인들이 채씨처럼 만족스러운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중년인 이들에게는 적은 시간이나마 노후를 준비할 시간이 있다지만, 준비 없이 노년을 맞은 이들에게 노후는 불안을 넘어 고통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발표한 ‘2004년도 전국 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를 살펴보면 3278명 가운데 노후생활 준비를 한 노인의 비율은 28.3%로 낮은 수준이었고, 절반(50%)이 자신의 경제상태를 ‘나쁜 편’이라고 답했다. 일자리가 있는 노인은 30.8%에 불과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일자리가 있다는 노인들 가운데서도 농·어·축산업과 단순노무직 종사자의 비율이 81.7%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보사연 고령사회정책팀 정경희 팀장은 “지금 노인들의 경우 학력수준이 낮아 농·어·축산업 등에서 기존의 노하우를 사용하는 데 그치거나 단순 노동을 하고 있다”며 “소득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빈곤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일이 필요한 노인들을 위해 정부가 하고 있는 사업은 ‘노인 일자리 사업’이 사실상 전부다. 2004년 시작한 이 사업을 통해 정부는 지난해 8만3천개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올해는 11만개까지 일자리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단순히 ‘소득 보충형’에 그치고 있다. 취업 희망 노인의 과반수(75.5%)가 돈이 필요한 생계형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부족한 점이 많다. ‘복지욕구조사’에서도 현재 정부의 일자리 사업을 통해 노인들은 평균 7개월 근무하고 월 20만원 안팎의 보수를 받고 있는데, 30만원 정도로 보수를 인상해줄 것과 9.6개월로 근무기간을 연장해주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노인 일자리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변재관 원장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 일자리 등 복지형 일자리와 민간 주도의 시장형 일자리를 늘려 노인 일자리 사업을 내실화하겠다”고 말했다.